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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

[D+3] 산토리니 - 피라, 페리사, 이아


산토리니의 아침은 마눌님이 끓여주는 커피와 함께 시작. 지난 밤에 호텔에서 렌터카를 주선해 줘서  오늘의 일정은 피라마을 -> 와이너리 -> 해변 -> 이아마을을 돌아보는 나름 알찬 코스. 국제 면허증이 없어서 렌탈이 안되는 줄 알았는데 걍 한국 면허로도 되더라. 10시에 차가 올때까지 기다릴 겸 해서 호텔 근방을 산책했다.

"애너스태시스 어팙먼트" 간판

뒷마당 전경


오늘의 외출 컨셉은 '그리스 국기'


10시 땡치자 차가 도착. 차종은 스마트. 면허가 있긴 하지만 면허 따고 운전대를 잡아본 건 이게 두번째. 게다가 표지판도 못알아보는 이국땅. 완전 후덜덜. 일단 내가 초보라 난 도로만 보고 가는 형국인데 Co-Driver님께서는 자타가 공인하시는 길치+방향치+회전인지 장애가 있으시다. 덕분에 피라마을로 들어가는 갈림길을 알아보지 못하고 쭉 갔다가 도로 한복판에서 유턴을 못해서 우물쭈물 하는 등의 생쇼를 하고 나서야 마을에 도착.

주차도 나름 성공.

피라마을은.. 이를테면 산토리니 섬(그리스 공식 명칭은 티라)의 읍내?같은 느낌이 나는 곳이다. 산토리니에서 제일 번화한 곳. 일단 운전에 내공을 너무 소모했기에 일용할 양식을 구하러 "럭키스 수블라키"에서 테익-아웃. 럭키스 수블라키는 산토리니 관광책자마다 빠지지 않고 소개되는 것 같다. 호텔에서도 극찬. "럭키스 수블라키. 붸리 딜리셔스".

마을 풍경

오늘의 식사를 책임질 "럭키스 수블라키"


이렇게 먹는다. "으앙"

맛은... 맛있다. 정말 맛있다. 수블라키는 그냥 "꼬치구이"의 일반명사인데 이걸  각종 양념과 채소류, 그리고 감자튀김과 함께 그리스에서 '피따'라 부르는 고유의 빵으로 말아서 먹는, 약간 햄버거 삘이 나는 음식이다. 뭐 우리가 먹은건 엄밀히 따지면 각각 수블라키 피따와 기로스 피따지만, 뭐 꼬치에 짤라서 굽느냐 통째로 구운 다음 베어내느냐의 차이. 하여튼 맛있다. 그래서 둘이 1개씩 먹구서 또 먹을라고 2개를 더 샀다.

배를 채웠으니 본격적인 마을 관광. 산토리니는 섬이고, 섬마을은 일단 항구 중심으로 발달하는 것이 순리. 피라마을도 원래는 항구마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라면, 항구는 당연히 해수면에 있어야 하는데, 바로 옆은 절벽이고, 절벽엔 정착을 할 수 없으니, 마을은 절벽 꼭대기에 있어야 한다는 점.

절벽위 마을에서 한컷

이 문제를 옛날에는 당나귀로 해결했다고 한다. 항구에 배가 들어오면 짐을 부리고 당나귀에다 짐을 다 옮겨싣고 절벽길을 따라 당나귀를 몰고 오르락 내리락 했던 것. 하지만 지금은 다 옛날 이야기. 피라마을 밑에 있던 항구는 이제 "옛 항구"로 불리고 있고 보다 남쪽에 새 항구를 지어서 현재는 항구로써의 본연의 기능은 새 항구로 다 옮겨간 상태인 것 같다. 아마도 관광목적의 배만 아직도 옛 항구로 다니는 듯한 모양새. 따라서 당나귀들도 원래의 화물운송이라는 목적을 상실. 당나귀들의 새 역할은 관광객 수송.

당나귀 위의 미러씨

동키 로드. 꽤 가파르다


당나귀들이 오르내리는 길은.. 경사도 경사라서 꽤나 무서운데, 그것보다 인상적인 것은 길바닥에 온통 흩뿌려져있는 당나귀똥들이다 -_-a 길을 보면 지푸라기 같은 것들이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데, 이게 다 당나귀 똥에 섞여나온 소화가 덜된 풀때기인듯. 냄새가 상당히 구수하다 -_-a 내려가는 데에는 한 20분쯤? 걸린것 같다.

항구는 고즈녁

항구까지 내려왔지만, 상당히 한산했다. 물은 (애게해가 다 그렇지만) 기똥차게 맑았다. 경치는 좋았지만 과도하게 한산해서 오래있기엔 다소 지루한 곳, 옛 항구.

다시 피라마을로 올라갔다. 올라갈 때는 케이블카를 이용. 케이블카의 수익금은 당나귀 주인들에게 일정비율 배당해 준다고 한다. 케이블카로 인해 생기는 당나귀 탑승료의 손실을 보전해 주기 위한 적절한 합의점인듯.

여사제 복장을 판다.

계단의 파란색은 집요하기까지 하다.


본격적인 피라마을 구경. 일단 골목골목이 다 이쁘고 흰색과 파란색의 대비가 강렬하다. 상거래도 활발한듯 싶고 사람사는 냄새가 난다. 활기찬 동네다.

점심때가 다 돼가기에 메갈로호리 마을에 있는 와이너리를 향해 출발...하였으나 역시나 이번에도 갈림길을 놏치고 마냥 직진했다. -_-a 결국 페리사 해변에 당도.

아 푸르구나 푸르러.

발이 4개.

마눌님이 수영복을 안챙겨오신 덕분에 바닷물에는 발만 담궜다. 산토리니 섬은 화산섬이라, 대부분의 바위가 현무암질이다. 바위가 현무암질이라 그 바위가 부서져 생긴 모래도 까맣다. 우리나라에선 보기 드문 흑사장. 해변 옆의 까페니온에서 목을 축이고 이번엔 제대로 와이너리를 향해 출발.

그리스 와인은 그닥 유명하지는 않지만, 뭐 역사가 역사니만큼 아마도 유럽에서는 와인을 가장 오랫동안 만든 나라였음이 분명하다. 풍토도 포도재배에 좋은 조건인만큼 꽤나 좋은 와인이 나온다고 하는데, 난 와인 문외한이라 걍 그런가보다 할뿐. 그리스에서는 관광 정책의 하나로 와이너리마다 와인 테이스팅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것 같다. 우리가 간 곳은 메갈로호리 마을의 "가발라"라는 이름의 와인 양조장.

가발라 와인 양조장 입구.

양조장에 들어서자 책임자인듯한 분이 와인 제조과정을 마구마구 설명해 주시는데..... 내 영어가 짧은 탓도 있지만, 이분이 하는 영어가 그리스 억양이 매우 심하게 들어가 있어서 알아듣는 데에 애로사항이 만개.

와인을 설명해주던 아저씨.

나갈때는 방명록을 써주는 센스.


와인 5잔 테이스팅에 5유로. 맛을 보고 맘에 들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와인을 사갈 수 있다. 미러는 필이 꽂혔는지 두병을 덜컥 구매.

다음 코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다는 이아마을. 전체적으로 좌우로 뒤집힌 C자모양의 섬인 산토리니에서 최북단의 마을이 이아마을이다. C자를 뒤집으면 꼭대기가 서쪽을 향하게 되므로, 이아마을은 애게해의 수평선으로 떨어지는 석양을 보기에 최적인 장소인 셈.
일단 이아마을에 도착한 시각이 5시 언저리라 해가 떨어질때까지 동네구경.

고양이가 흔하다.

교회도 흔하다. 그리스 정교회의 나라.

골목골목이 다 '그림'이다.

들이대면 엽서.

미러의 풍차쇼.

이아 마을은 참 이쁜 마을이다. 그런데 피라마을과는 조금 느낌이 다른 것이, 피라마을은 생동감이 있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역동적인 느낌이 있었는데, 이아마을은 그보다 조금 더 정적이다. 게다가 마을 구성이 매우 입체적이다. 높낮이의 변화가 매우 심하고고 골목길이 거의 다 3차원 곡선이어서 이아마을을 제대로 지도로 만드려면 3차원 지도가 필요할 지경. 정적인 마을 분위기와 입체적 구성이 맞물려 신비한 느낌을 준다.
한참 돌아다니다가 적당한 카페에서 목을 축이며 낙조를 기다리기로 했다.

까페에 앉고 보니 여행가이드에 나온 바로 그곳.

까페에 앉아서 사진을 찍고 있으니까 까페 점원이 曰
"엽서같은 사진을 원하면 그냥 여기서 찍기만 하면 됩니다"

일몰 시간.

석양을 바라보는 사람들.

정말 전세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석양을 구경한다. 해가 딱 떨어지자 그 사람들이 모두 약속이나 한듯 일제히 환호성을 하며 박수를 짝짝짝. 누가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이아마을 석양을 볼때는 다들 그런다고 한다. (하루키의 먼북소리에서 봤던가?) 그런데 거기서 박수를 치는게 별로 어색하지 않고 당연히 그래야 하는 듯 느껴질 정도로 석양이 예쁘다.

석양빛 이아마을 풍경.

해진 뒤의 골목길.


산토리니는, 매우 비현실적인 섬이다. 카메라 프레임을 어떻게 잡아도 엽서사진이 나오는 비현실적인 풍경. 이상한 섬이다.
게다가 음식도 맛있다.
이상한 섬이 아니라 이상적인 섬인가? -_-a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