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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고구마를 씻어먹는 원숭이


미디어의 영향인가, 아니면 정말 고구마를 씻어먹는 원숭이 이론 이 맞는 것인가?
아니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핫'하고 '트렌디' 한 것인가?
요사이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 또한, 
이 세상을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인간을 다른 종과 구별되게 만드는 지적인 어떤 특질이 아니라,
생태계의 가장 윗부분에 올라서서 다른 생물을 계획적이고도 조작적으로 통제하는
생태계의 일원으로서의 인간.

인간이 만든 공장같은 사육장에서 돼지들은 뒤로 돌아설 수도 없는 작은 틀에 갇혀 사육되고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도축을 당한다고 한다.
또한 닭들은 A4 반 장 크기의 케이지(그야말로 '닭장'이다-) 안에 갇혀 평생 날개를 한 번 펴보지도 못한 채 자란다고 한다.
발이 숭숭 빠지는 철망을 힘겹게 그러쥔 채-

이것 뿐만이 아니라 실험에 동원되는 동물들.
쇼에 등장하는 동물들.
버려지는 동물들.
인간에 의해 태어나지 않았어도 될 태어남,
그리하여 사육되지 않았어도 될 사육, 당하지 않았어도 될 고통, 
당하지 않았어도 될 죽음을 겪은 많은 동물들.

이런 생각을 하면 마음 한 켠이 몹시 무겁고 저려온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돼지와 닭들이 너무나 불쌍하고 인간이 무섭다가도
나는 또, 그렇게 '생산'된 고기 없이는 또 못사는 인간이니까.
그런 공장식 사육시스템이 하루 아침에 없어져 학교 급식에 고기반찬이,
동네에 그 많은 치킨집이 사라진다면 그건 그거 대로 또 싫을테니까.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은 신약을 드셔보시라 하면 식겁하며 손사래를 칠 테니까.
말하자면 나는 그 '계획적이고도 조작적인 통제'의 최대 수혜자 중 하나인 것이다.
 
그러면서 집에 있는 동물은 자식처럼 물고 빨고 하며 귀애하고
유기동물과 동물실험은 반대하는 그런 입장을 취하자니
내 안에서 해결되지 않은 모순적인 양가감정이 어데 갈 바를 모르고 요동을 치고 있다.
이것은 정서적 가책인가, 아니면 논리적 모순에 대한 불편함인가.

물론 사람은 어떻게든 다른 생물로 부터 양분을 얻어서 살아가도록 만들어진 존재이고 (ref: 태개)
그 자연스러운 과정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부정하면 고기를 끊어야 하니까 -_-)
다만 그 다른 생물로부터 양분을 얻어서 살아가도록 되어있는 그 과정이, 
조금 더 자연스럽고, 온당한 방법이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내 나름의 타협점이랄까. 이 둘을 아우르는 자연스러운 해결점을 찾고 싶다.
그것이 남들 눈에는 궤변 투성이이고, 헛점 투성이인 거지같은 논리이고,
타조가 머리를 구멍에 쑤셔박는 식의 회피일지라 해도-.

육식을 끊을 수 없다면, 가정에서 먹는 달걀과 우유를 방사유정란과 방목소에서 나온 우유로 바꿔가보자.
또 방목소고기나 돼지고기도 요새는 예전보다 쉽게 주문할 수 있다.
물론 가격은 몹시 비싸지만, 그래서 육식을 줄일 수 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또 좋은 일.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은 화장품을 사용하며
(이것이 동물실험 자체를 반대하는 말은 아니다.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았다면,
 기꺼이 내가 사용해봐 주겠다는 뜻 정도의 의미이다)
유기동물의 입양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위해 헌신하는 분들을 후원함으로 성의를 표시하기 정도.

나는 너무나 이기적이고 영향력이 미미한 인간이라 할 수 있는 노력이 이 정도 뿐이라는게 나 자신에게 서운하다.
하지만 나는 동물복지에 대한 깊은 생각을 내세우며 회식때 밀폐용기에서 꺼낸 풀을 뜯어먹고 싶지도 않고
모피를 반대 하기 위해 피칠갑을 하고 시위에 참가할 수도 없다.
그것이 누군가에겐 또 다른 종류의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더욱 솔직히는 이러한 생각때문에 내 평범한 인간관계가, 평안한 사회생활이
요만큼이라도 침해를 받는 것이 싫다.
그 정도로 나는 이기적인 인간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저 가장 개인적이고 가장 소박한 방법으로 내가 생태계의 한 일원으로서 할 수 있는 노력을 하기로 했다. 
세상이 변하지 않을지라도, 단지 내가 먹을 수 있는 고기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 뿐이라도.
단지 면죄부를 사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뿐일지라도.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내가 움직이는 것이고,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이, 이제는 무슨 뜻인지 알고 있으니까.